게임 내용을 파고 들면 한도 끝도 없으니 기타 이모저모에 대해서만 확인을 하자.
캐릭터 서버이전(29,700원)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서버 통합 혈맹이 탄생했다.
한창 리니지가 유행하던 2000년 즈음엔 리니지 게임 플레이로 유명해진 사이버인들도 꽤 많았다.
여러곳에서 리니지 기행문을 쓰며 유명해진 군주 '환세르'(현 디스이즈게임 기자),
리니지 플레이포럼에서 칼럼을 쓰던 여성군주 '야채겅주버거'나 여성마법사 'Z씨즈Z',
그 외에 리니지 플레이포럼을 운영했던 장대리밴드, 유나 등등등.
서비스 14주년째인 2012년 12월에 동시접속자수 22만 명을 기록해 자체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.
신규 유저와 복귀 유저가 2배 늘어났기 때문이라고.
쌩초보의 상징은 단연 단검/가죽자켓/양초 두개.
지금이야 이런저런 초보 아이템을 주지만,
예전엔 처음 시작하면 주는 아이템이 저게 전부였기 때문이다.
군주와 기사, 법사는 어두우면 불이라도 밝히라고 양초를 줬지만,
요정의 경우 어두울 때 '인프라레드 사이트'라고 해서
화면이 적외선 영상처럼 온통 초록색이 되는 대신 시야가 좁아지지 않는
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양초를 받지 않는다.
이른바 '6검 4셋'이라는 것이 생초보를 벗어난 캐릭의 상징.
+6강 이상의 무기나 +4강 이상의 비요정족 방어구는 랜덤 확률로 +1~3강이 되는
축주문서로만 강화할 수 있는데,
+6강/+4강부터는 깨질 확률이 있어서 보통은 최소한 깨지지는 않게
+5/+3강에서 강화하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.
운이 좋아서 한번에 +2~+3정도가 올라가면 비싸게 팔리지만,
+6/+4 자체는 구하려고 하면 일반주문서로도 올릴 수 있기 때문에
저주받은 주문서로 -1강을 시켜서 다시 강화에 도전하던지
아니면 싸게 팔아치웠던 게 이유다.
2000년대 초반에 '6검'이라고 하면 보통 그시절의 국민검이었던 일본도의 +6강이었다.
마나회복 수단이래봐야 정말 천천히 마나를 채워주는 마나물약밖에 없던 당시에는
마법사 15레벨에 게렝 퀘스트를 깨면 줬던 마나의 지팡이가 마법사의 필수 아이템이었다.
근접전하고는 인연이 없는 법사가 다른 캐릭터를 두들겨패야
겨우 마나 흡수를 할 수 있었지만,
그래도 그 당시는 마나 회복 수단 자체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
서먼 몬스터를 두들겨 패던지 약한 몹을 두들겨 패던지
무슨 수를 써서든 마나의 지팡이를 활용했었다.
'게임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이스트 소프트가 만든 게임, 카발 온라인 - 1 (0) | 2017.07.26 |
---|---|
마지막 이런저런 이야기들, 리니지 - 14 (0) | 2017.07.24 |
프리서버 문제, 리니지 - 12 (0) | 2017.07.17 |
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았던 게임, 리니지 - 11 (0) | 2017.07.14 |
작업장을 막기 위한 패치들, 리니지 - 10 (0) | 2017.07.12 |